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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전문
- 모닥불. 모닥불. 은은히 붉은 속. 차차 흙 밑에는 냉기가 솟고. 재 되어 스러지는 태(胎). 강 건너 바람이, 날 바보로 만들었구려. 파락호 호주(胡酒)에 운다. 석유불 끔벅이는 토담방 북데기 깐 토담방 속에. 빽빽이는 갓난애. 갓난애 배꼽줄 산모의 미련을 끊어. 모닥불. 모닥불 속에. 은근히 사그라진다.
- 눈 녹아. 지평 끝, 쫓아오는 미더운 숨결. 아직도 어두운 영창의 문풍지를 울리며. 쑤성한 논두렁. 종다리 돌을 던지며 고운 흙. 새 풀이 나온다. 보리. 보리. 들가에 흩어진 농군들. 봄밀. 봄밀이, 솟쳐오른다. 졸. 졸. 졸. 하늘 있는 곳 구름 이는 곳. 샘물이 흐르는 소리.
- 해마다, 해마닥. 강을 건너며. 강을 건너며. 골짜기 따라 오르며. 며칠씩, 며칠씩, 불을 싸질러. 밤하늘 끄실렀었다. 풀 먹는 사슴이. 이슬 마시는 산토끼. 모조리 쫓고. 조상은 따비 이루고. 무덤 만들고. 시꺼먼 뗏장위에 산나물 뜯고. 이 뒤에사 이 뒤에사 봄이 왔었다.
- 어찌사 어찌사 울을 것이냐. 예성강이래도 좋다. 성천강이래도 좋다. 두꺼운 얼음장 밑에 숨어 흐르는 우리네 슬픔을 건너. 보았으니. 보았으니. 말없이 흐르는 모든 강물에. 송화. 송화. 송홧가루가 흥건히 떠내려가는 것. 십일평야(十日平野)에 뿌리를 박고 어찌사 울을 것이냐. 꽃가루여. 꽃수염이여.
노래듣기
오장환 시에 붙인 노래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