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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오장환
시인 오장환 (1918년 5월 5일)

오장환시인은 백석, 이용악과 더불어 1930년대 후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918년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에서 태어난 오장환시인은 1951년 34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하였다. 오장환시인은 휘문고등학교를 다닐 때 정지용시인에게서 시를 배웠다.

휘문고등학교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교지 《휘문》에 「아침」,「화염」과 같은 시를 발표하고,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열여섯 살이었다. 어려서 박두진시인과는 안성초등학교를 같이 다녔으며, 일본 지산중학에 유학하고 온 뒤부터는 서정주, 김광균, 이육사시인 등과 가깝게 지냈다.

오장환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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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에 첫 번째 시집 『성벽』, 1939년에 두 번째 시집 『헌사』를 내고 난 뒤에는 “문단에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서정주 시인은 전한다.

일제말기 단 한 편의 친일시를 쓰지 않으면서 그 어둡고 궁핍한 시기를 견딘 오장환시인은 신장병을 앓다가 병상에서 해방을 맞는다. 해방의 감격과 혼란, 새로운 국가건설에 대한 꿈과 열정, 부끄러운 심정 등을 사실적으로 그린 시집 『병든서울』을 발간하였다. 이 시집은 ‘해방기념조선문학상’ 최종후보작에 오르는 등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시「절정의 노래」는 중학교 5,6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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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성벽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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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의 혼란기에 오장환시인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신탁통치나 통일에 관한 문제를 잘 해결해 주길 바라며 지방으로 문화선전활동을 다니며 시낭송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테러를 당해 치료할 곳을 찾아 남포로 갔고 거기서도 치료를 할 수 없어 모스크바 볼킨병원으로 후송을 갔다. 그리고 6.25전쟁의 와중에 치료를 받지 못한 채 34살의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떴다.

오장환의 작품 경향

오장환은 이용악 , 백석과 함께 193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장환은 우리 시문학사에서 서정주 유치환과 함께 생명파 시인으로 불리어 왔다. 그러나 오장환은 인생의 토대인 식민지 현실, 생명이 발현되는 토대인 이 땅과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생명파 시인들과 시적 지향이 다르다.

오장환의 시는 리얼리즘 시가 많다. 오장환의 시에 나타나는 현실에 대한 관심은 몇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장시 「전쟁」에서 발견되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대한 반대와 전쟁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고발이다. 두 번째는 봉건적 인습에 대한 비판과 고발이다.「성씨보」를 시작으로 「성벽」,「정문」, 「종가」등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이 반봉건의식이다. 세 번째는 식민지 근대도시에 대한 비판이다. 장시 「수부」는 자본주의화 하는 식민지 근대도시 서울에 대한 비판을 중심내용으로 하고 있는 시다. 네 번째는 당대 농촌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이다. 「모촌」과 「북방의 길」은 오장환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우리 시문학사에서 1930년대 식민지 지배하의 농촌현실과 농민들의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한 오장환은 모더니즘 시인이기도 하다. 근대도시의 문제를 다룬 도시문학의 성격을 보이기도 하고, 「카메라룸」이나 「전쟁」처럼 현대적인 감각과 기법이 두드러진 표현양식을 보이기도 하고, 도시를 배회하는 보헤미안의 퇴폐적인 삶의 모습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오장환의 시에서 발견되는 절망과 퇴폐와 방황은 속악한 식민지 근대에 저항할 수도 동화될 수도 없던 시인의 여린 자아가 분열하는 모습이다. 「불길한 노래」, 「싸느란 화단」,「헌사」, 「소야의 노래」와 같은 시가 그걸 잘 보여준다.

오장환 시가 보여준 치열한 현실인식은 생명파에 속하면서도 생명파와 구분되는 독자성을 보여주며 모더니즘 시에 속하면서도 모더니즘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적 성취를 보여준다. 이 점이 오장환을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시단의 3천재로 불리게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오장환 문학관(2006년 개관)

2006년에 개관한 오장환문학관은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 오장환 생가 옆에 있다.

문학관 안에는 휘문고 교지 《휘문》에 실린 초기 시, 방정환 선생이 만든 《어린이》지《조선일보》등에 발표한 오장환 시인의 동시, 이육사 시인에게 보낸 친필 엽서, 해방 후 중학교 5,6학년 교과서에 실린 시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해마다 9~10월 오장환문학제가 이곳에서 열리며 백일장, 시그림그리기 대회, 시낭송대회, 문학강연 등이 열리고 있다. 「오장환 시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도종환 시인이 오장환문학관 명예관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