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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속리산 관문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
주소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로 596
문의 043-540-3220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

소개

대한 8경의 하나로 1970년 3월 24일 국립공원이 된 속리산 길목 해발 430m에 열두 굽이 말티재가 있다. 정상(頂上)은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으로 고갯마루 동쪽은 남한강, 서쪽은 금강 수계(水系)를 가르는 분수령(分水嶺)이다. 남쪽 능선(稜線)은 갈목재를 거쳐 천왕봉에서 백두대간과 만나고 북쪽 능선은 국사봉을 거쳐 미원고개를 지나 청주 상당산성으로 이어진다.

 

이 말티재는 신라 제24대 진흥왕 14년(서기553년) 의신조사가 인도를 다녀오는 길에 법주사를 창건하려고 흰노새 등에 불경(佛經)을 싣고 넘어간 이래 1464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자비를 깨우치러 이 고개를 넘어 법주사로 갔으니 여기에 얼마나 많은 사연(事緣)과 애환(哀歡)이 서려있을까?

 

혜공왕 때 진표율사는 금동미륵대불을 세우려고, 고려 태조 왕건은 고개길에 얇은돌(薄石)을 깔고, 공민왕은 안동에서 홍건적의 난(亂)을 피한 후 나라의 융성을 기원하려고, 조선 태조 이성계는 왕이 되기 전 100일 기도하러 이 고개를 넘어 법주사로 갔다.

 

3대 태종은 즉위 16년 심신을 다스리려고, 7대 세조는 즉위 10년 훈민정음 주역 신미대사를 만나려고, 15대 선조 때 임진왜란 당시 승병(僧兵)들이 법주사로 집결하러 갈 때도, 인조 4년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불에 탄 법주사를 재건하려고, 구한말(舊韓末) 당백전에 쓰려고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을 훼철(毁撤)하러 가던 사람들도, 1960년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 부부도 연말마다 이 고개를 넘어갔다.

 

옛날 말티재길은 한, 두 사람이 오가던 오솔길이었으나 법주사가 세워지고 난 후 통행자가 늘어나 그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일본 강점기(強占期) 1924년 충북지사 박중양이 신작로(新作路)를 냈고 1935년 도로 확장이 되었으나 현재 상·하행 각각 1차선 도로는 1966년 6월 김효영 충북지사가 당시 지역 국회 육인수 의원(영부인 육영수 오빠)의 도움으로 국군과 미군(美軍)장비 지원, 보은군민들의 노력 동원으로 확·포장 되었다.

   

‘백두대간 속리산관문’은 국·도비 등 58억원 예산으로 2016년 6월 21일 착공, 1층 79m 터널, 2층 59m 아치형 공간(전시실,강의실,휴게시설), 리산방향 1층 상단에 자비성(慈悲城), 관문, 2층 좌우 벽에 국보인 주사 팔상전과 쌍사자석등, 보은방향 1층 상단 보은성(報恩城), 2층 좌우 벽에 중부지방 최대 규모인 삼년산성과 전국 최초의 경관조명 보은대교가 있으며 맨 위의 복원된 능선에는 천왕봉, 문장대 모형을 만들어, 탐방객들이 전망을 즐기는 쉼터로, 속리산 관광의 새로운 명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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