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01

유네스코세계유산 등재의 꿈, 법주사

통일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대사가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와 속리산의 웅장하고 험준한 산세를 보고 불도를 펴기 위해 큰 절을 세웠다는 법주사. 불경을 가져 온 의신이 머물렀다 해서 그 이름 유래됐다. 울퉁불퉁 우람한 속리산의 화강암 연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산자락 아래 분지를 이루고, 물 맑고 수량 풍부한 계곡이 절 앞을 흐르니, 대사를 눌러 앉힌 것은 대사의 의지가 아니라 그 터가 아니었을까.
1500년전 의신대사가 창건한 법주사는 사적 제503호로 사찰 자체가 중요문화재이지만, 그에 더해 명승61호로 ‘속리산 법주사 일원’이 지정되어 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도 중요문화유산으로서 인정받은 것을 우리는 안다. “관음봉(983m)부터 속리산 최고봉 천왕봉(1058m)까지 일곱 개의 봉우리가 연봉을 이룬 우람한 산세가 품고 있는 넉넉한 분지. 그곳에 자리 잡은 법주사. 두 명승이 어우러지니 명승 중의 명승이라.”
‘자연이 물려준 속리산의 아름다운 경치와 바위들, 그리고 법주사 지역에 있는 역사 깊은 문화유산들이 어우러져 펼쳐져,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라는 점이 문화재청이 말하는 ’명승지정의 이유‘다. 좋은 것은 나눠야 하는 법. 문화재청은 법주사를 비롯 7개 전통사찰의 유산적 가치에 주목한 끝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 신청을 했다. 그 결과 잠정목록 등재가 확정되었다. 2013년 12월 17일의 일이다.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봉정사, 부석사, 통도사 등 총 7개 산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확정되는 순간까지 앞으로 2년 남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017년 1월 등재 신청서 접수에 이어 2017년 9월 현지실사를 실시하고, 2018년 7월 공식적으로 등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의 전통 산사(Traditional Buddhist Mountain Temples of Korea)'라는 이름으로 등재된 내용을 보면,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봉정사, 부석사, 통도사 등 이들 산사는 사찰 건축 양식, 공간 배치 등에서 인도 유래 불교의 원형을 유지하고 중국적인 요소를 계승하면서도 우리나라의 토착성을 보여주는 동아시아 불교문화 교류의 증거임을 문화재청은 밝히고 있다. 관련 내용은 유네스코 누리집(www.unesco.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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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일원
산지에 들어서서 절의 외부와 내부 공간이,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우리 고유의 전통사찰의 멋은 겉모습만이 아니다. 그 문화와 함께 우리나라 불교의 사상·의식·생활·문화 등이 시대를 초월해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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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전경
절 바깥에서 절을 바라보면 자연과 동화된 전통사찰의 멋스러움에 감탄이 절로 날 지경이다. 절 마당이나 불전 등의 당우에 들어서서 주변을 바라보면 자연경관을 절 내부로 끌어들이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STORY #02

법주사탐방의 중심 팔상전

법주사는 통일신라부터 고려, 조선시대 등 각 시대의 중요 불교문화유산이 전해지는 대찰이다. 법주사 경내로 막상 들어서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봐야할지 눈이 휘둥그레진다. 국보 3점, 보물 13점 등의 중요 불교문화유산과 많은 수의 충청북도 유형문화재가 있는 곳이 법주사이기 때문이다.
법주사 탐방의 시작은 오리숲의 일주문의 지나고 오리숲의 끝 법주사 어귀에 들어서면서 부터다. 법주사 어귀 법주사를 중창한 벽암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 ‘벽암대사비’와 속리산의 내력을 소개하고 있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7호 ‘속리산사실기비‘ 두기의 비석에서 발길을 잠시 멈춘 다음, 수정교 건너 금강문을 지나 충청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6호 사천왕문을 나서면, 법주사에 전래된 현존하는 유일의 목탑이자 우리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팔상전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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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일주문 전경.
‘호서제일가람’이라 적힌 편액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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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어귀 전경.
법주사를 안내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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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사실기비.
조선 현종 7년(1666)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당시 명망이 높았던 우암 송시열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 비문의 내용은 속리산 수정봉 위에 있는 거북바위에 얽힌 이야기에 관한 것으로, 불교와 유교의 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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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벽암대사비.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던 법주사의 전각들을 다시 세우는 중창불사를 한 대사의 행적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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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문 전경.
수정교를 건너면 금강문에 이르게 된다. 금강문 뒤로 사천왕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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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사천왕문 전경.
사천왕문 앞 훌쩍 키 큰 전나무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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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팔상전 전경.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 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하나뿐인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 팔상전을 기점으로 삼아 법주사 경내에 전래되는 불교문화유산을 탐방하는 것이 좋다. 팔상전을 중심으로 동쪽 대웅보전에 이르는 화엄신앙축과 서쪽 용화보전에 이르는 미륵신앙축이 직각을 이뤄 교차하도록 가람배치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가람배치의 원형을 보기는 어렵다. 초창이후 1500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에 이르니 그 배치 면에서 화엄신앙축이 변화를 겪었고, 또한 미륵신앙축이 깨졌으니 그렇다. 그나마 화엄신앙축은 본래의 축을 유지하고 있으니 화엄신앙축을 먼저 탐방하는 게 좋을 듯싶다. 동선을 흩트리지 않고 화엄신앙 유산과 미륵신앙유산, 그리고 그 밖의 불교문화유산을 차례로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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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상전을 중심으로 왼쪽 입면 앞으로 쌍사자석등이 위치하고 있다. 이 방향으로 화엄신앙축이 지나간다. 탑의 오른쪽 입면 정면으로 미륵신앙축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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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신앙축 전경.
왼쪽부터 팔상전, 쌍사자석등. 나무에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사천왕석등이 배치되어 있고 오른쪽이 금당인 대웅보전이다.
탑과 금당사이 석등이 두 개 있는 이유는 쌍사자석등 뒤로 극락전이 있었으나 1960년 철거되어 그 자리가 비었기 때문이다. 사천왕석등이 불전 앞을 비추고 있는 대웅보전은 구례 화엄사 각황전, 부여 무량사 극락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불전 중 하나로 웅장한 불전의 극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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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상전에서 바라본 화엄신앙축.
쌍사자석등 뒤로 대웅전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있다. 오른쪽 전각은 약사전, 왼쪽에 보이는 전각은 원통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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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사자석등 전경.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사자를 조각한 석조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매우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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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사자석등 측면.
석등을 세운 시기는 통일신라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측되며, “조금 큰 듯한 지붕돌이 넓적한 바닥돌과 알맞은 비례를 이루어 장중한 품격이 넘친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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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석등과 대웅보전.
금당 앞에 배치된 이 석등은 전체적으로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에는 지붕돌을 올리고 있다. “대체로 각 부분의 양식이 정제되어 있고 조각수법이 우수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제작시기는 신라 불교미술이 꽃피워진 8세기 중기 이후로 짐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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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탄 것을 인조 2년(1624)에 벽암이 다시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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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대웅보전에 모셔져 있는 이 삼불좌상은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아미타불상, 오른쪽에 석가여래상을 배치한 삼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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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서쪽에 전각들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부터 삼성각, 명부전, 진영각이다.
의신대사가 절을 창건한 이후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와 그의 제자 영심대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법상종 도량이 된 법주사의 미륵신앙축은 팔상전 서쪽으로 보이는 수정봉과 일직선상으로 존재했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용화보전에 봉안한 장육존상을 고종 3년(1866)에 대원군이 경복궁 역사에 필요한 당백전을 만들기 위하여 파괴한 후 전각도 철거되었기 때문이다. 팔상전에서 수정봉 아래 용화보전이 있던 자리까지의 미륵신앙축에 있던 국보 제64호 석련지와 보물 제1417호 석조희견보살입상 등 두 점이 본래의 자리를 벗어나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주변에 따로 떨어져있다. 석련지는 금동미륵대불 오른쪽에, 석조희견보살입상은 팔상전 대각선방향 서북쪽에 있는 국보 제55호 원통보전 오른쪽 뒤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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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석등에서 바라본 법주사 전경.
팔상전을 기준으로 오른쪽 원통보전 앞으로 미륵신앙축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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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사자석등과 원통보전.
원통보전 뒤로 석조희견보살입상이 위치하고 있다. 원통보전 지붕은 중앙에서 4면으로 똑같이 경사가 진 사모지붕이다. 단순하지만 특이한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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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희견보살입상.
석조희견보살입상은 지대석 위에 비교적 큰 향로를 머리에 이고 서 있는 흔치 않은 조각상이다. 희견보살상으로 불리어 오고 있으나 그 유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비록 얼굴부분에 손상이 있으나 향로를 받쳐 든 전체적 구성미나 세부 조각수법이 독특한 조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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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련지.
석련지는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연꽃을 띄워 두었다고 한다. 불교에서의 연꽃은 극락세계를 뜻한다.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절제된 화려함 속에 우아함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자태는 석련지의 대표작”이라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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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 앞에서 바라본 법주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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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를 찾은 신도들에게 팔상전 앞에서 법주사의 미륵신앙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스님. 수정봉과 팔상전 일직선상이 미륵신앙축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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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금동미륵대불과 팔상전.
STORY #03

법주사 불전 2대축 외의 전래유물을 찾아서

용화신앙축과 미륵신앙축을 차례로 돌아본 후 보물 제1413호 법주사 철솥을 찾아볼 일이다. 그 크기만 보아도 대찰 법주사의 사세를 가늠할 수 있다. 다시 석련지를 지나쳐 산자락에 이르면 직사각형 모양의 충청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70호 석조에 이르게 된다. 석조를 보면 철솥을 바로 연상시킬 수 있을 정도로 크다. 쓰임새에 두 유물은 연관성을 갖는다. 석조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거대한 바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마름모꼴의 거대한 바위가 앞으로 넘어질 듯 불안해 보이는 이 바위의 높이는 20m, 마름모꼴의 바위와 맞닿아있는 거대바위 옆으로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지만 높이 6m의 큰 바위에서 돋을새김으로 조각된 보물 제216호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을 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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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철솥.
큰 사발(大鉢)의 형상을 한 보은 법주사 철솥은 높이 1.2m, 지름 2.7m, 둘레 10.8m, 두께 10∼3㎝의 거대한 크기로, 상부의 외반된 전이 달린 구연부는 둥글게 처리하였고 기벽(器壁)의 두께는 3∼5㎝ 정도이며 무게는 약 20여 톤으로 추정하고 있다. 법주사의 사세(寺勢)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 철솥은 국내에 전하는 사례가 매우 희귀할 뿐만 아니라 거의 완벽한 조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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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석조.
법주사의 3천 승려들의 식수를 담아두던 돌그릇이라 한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아무런 조각을 하지 않은 간결한 모습이며, 규모는 길이 446㎝, 폭 240㎝로 제법 크다. 통일신라 성덕왕 1년(720)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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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거대바위 밑에 큰 바위가 바위를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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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바위를 이 조그만 바위가?” 진짜 이 바위 때문에 바위가 안 넘어지는 것인지. 신기해하는 한 가족의 모습이다. 탐방객들은 이 바위에 돌탑을 올리며 인사를 하곤 한다. 바위에서 신통력을 느낀다음 소원도 빌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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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16호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이 세 바위 중 가장 작은 바위의 평면에 돋을새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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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04

63년 만에 빛을 본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용화보전에 봉안되어있던 장육존상을 대원군이 경복궁 역사에 필요한 당백전을 만들기 위하여 파괴한 후 헐려진 용화보전과 장육존상의 10배에 이르는 거대한 미륵대불 조성이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한국 근대조각의 대가인 김복진이 맏아 시작된 미륵대불 조성은 시멘트조로 진행됐다. 불상을 조성하던 중 80%의 공정이 진행되는 상태에서 625동란으로 중단되었다. 종전 이후 나머지 공정을 진행하여 1964년 5월에 이르러서야 대불의 완성을 보았으나 자연 훼손이 심해 1986년 해체하고, 시멘트조 크기와 모습 그대로 1990년 4월 청동제 미륵대불로 다시 조성하여 완성을 보았다. 청동 116t이 들어간 세계 최대 청동제 미륵불의 탄생이었다. 이후 2000년 개금불사를 일으켜 2년만인 2002년 황금 80kg을 들여 금동미륵대불을 완성했다. 이 불상은 세계 최대의 미륵불 입상으로 높이 33m이며 높이 8m의 기단부 안에는31 용화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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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금동미륵대불과 사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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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의 지붕과 금동미륵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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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의 금동미륵대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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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미륵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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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미륵대불이 있는 법주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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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의 금동미륵대불201-.